#1.
2006년 겨울에 나는 놀이동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같이 들어와서 같은 장소에서 같이 일하게 된 네 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전체 파트타임 인원이 천 명 가까이 되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확률이었다.)
신기하게도 이름도 비슷했다. 이름이 한글자만 달랐는데,
발음 상으로는 거의 같아서 부르는 사람들도 신경 쓰면서 불러야 하는 정도였다.
내가 여기서 아무리 미화시켜 말하려고 해도,
솔직히 이 형.
조금 못났다.
지나치게 약해보이는 신체조건,
서비스업에 치명적인 내성적 성격,
언변도 없고, 특별한 기술이나 교육을 받은적도 없다.
멍 해보이는 표정, 항상 반 쯤 벌려져 있는 입.
세련되지 않은 언어사용.
보통 '착하다' 라는 표현을 이럴때 쓰더라.
요리조리 뜯어봐도 특징이란 게 보이질 않을 때,
딱히 표현할 말이 적절치가 않은,
그 형은, 그냥 '착한' 형이었다.
#2.
난 그가 무척 싫었다.
왜 싫었는지, 그 이유를 그 때는 몰랐다.
사람들이 그와 나의 이름을 헷갈려서 부르면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그 싫은 감정은 업무 중에도 심심찮게 드러났다.
보통은 넘어갈만한 근무자 상호간의 의견충돌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그 파트에서는 근무자들의 회식일자가 상당히 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대부분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나였고,
질타를 받는 쪽은 그 형이었다.
네 살이나 많은 사람.
이름도 비슷한,
큰 이유가 없다면, 오히려 친밀감을 느낄 법한 그 사람을,
난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3.
4천원 인생.
한겨레21 기자들이 직접 '최저임금' 을 받는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그 생생한 이야기를 기사로 전달하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제목은 발간될 당시의 최저임금액을 의미한다)

마트 정육 매대에서,
갈비집과 24시 감자탕 집에서,
가구 공장에서,
파견나간 보일러 공장에서,
기자들은 그 노동의 현장에 있는 수 많은 '착한' 이들을 본다.
#4.
책 내용을 자세히 기술하고 싶지 않다.
조금이라도 더 설명하려면,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받은 임금이 생활에 충당하기에 얼마나 적은 액수인지,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마치 '그런 사람들이 있다더라' 하는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말 테니까.
이 창을 닫고나면,
까맣게 잊을, (혹은 기억 깊숙히 던져놓을) 이야기가 될 테니까.
#5.
나는 그를 아직도 미워하고 있는걸까.
글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나고,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조금은 성장했다.
내가 이해한 그것,
내가 싫어한 그의 모습에는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속에 감추어두었던
나의 약한 모습들,
자신감 없는 목소리,
사교성 없는 성격,
쓸데없는 고집으로 집단에서 멀어졌던,
더 어렸을 적의 내 기억이
그 형의 모습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 형을 싫어했다기 보다는,
그 멋 없는 모습을 다시 갖게 될 수도 있다는
그 불안감이 싫었던거다.
#6.
파편화.
깨어져서 조각들이 흩어졌다는 말인가.
누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에 그와 같이 TV를 볼때,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해 한 농민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그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게 누가 농사 지으래...?"
그래,
그 때의 당신 생각은 논리적이고 합당했을 것이다.
돈 안되는 일을 붙들고 죽자사자 일하다가,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아니 정확하게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고 있겠지만)
그 뒤에 생략된 말은 이렇지 않았을까.
"그러게 누가 농사 지으래...? 나처럼 공무원이 되면 큰 돈은 몰라도 생활은 걱정 없잖아"
거울은 애초에 한 조각이었다.
커다란 한 조각.
우연히 조금 큰 조각을 줍게 된 당신은,
사실은,
두려운거다.
그 조각이 또 깨어져서 나누어질까봐.
내 손에 쥔 그 조각도,
저렇게 작아질까봐.
#7.
최저임금.
헌법에서, 국민의 기초생활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법률로 정한,
제도이다.
하지만 실상 최저임금으로 책정되는 일들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생산성이 최저인 일.
기술과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 일.
가장 낮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
지금도 수많은 철수와 영희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왜 더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느냐고 질타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측은함인가,
안도감인가,
동질감인가,
혹은,
불안감인가.
#8
거울은,
애초에 한 조각이었다.
커다란,
한 조각.
조금 큰 조각을 쥔 당신은 안도감을 가져도 좋고,
눈치 없이 작은 조각을 쥔 사람들을 놀려도, 혹은 불쌍하다 생각해도 좋다.
그런데 왜 거울은 깨어져야만 했던 걸까?
아마도,
당신이 쥔 그 큰 조각도,
당신의 얼굴을 전부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